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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알고]
 1년 지나 "반품" 집어던져
'갑질' 약자의 일상

  • 입력 2020-06-02 13:49:51
  • 수정 2020-06-02 14:14:45
뉴스래빗 #팩트알고 : '대한민국 갑질'

②편 '소비자 갑질'이란 무엇인가
"당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목소리

▽ 종류는? 발언·신체접촉·협박·차별·폭행
▽ '모욕과 욕설' 10명 중 8명 "당해봤다"
▽ 왜 일어날까? 피해자 목소리 들어보니
▽ 카페, 세차장, 전화…일상이 된 갑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 주] 서울 강북구 소재 한 아파트의 경비원 최모씨가 2020년 5월 10일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최씨는 유서를 통해 "억울하다"고 호소했습니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이 2020년 5월 11일 올린 국민청원('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에는 5월 28일 현재 43만여명이 동의한 상태입니다. 경찰이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을 불러 조사했지만,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갑질' 현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갑질'은 수 년 전부터 끊임 없이 사회적 논란거리였습니다. 외신이 발음을 그대로 쓴 'gapjil'로 써 조명할 정도죠. 이미 만연한 사회 현상이지만 명확한 정의도, 해결 방안도 없는 상황입니다.

뉴스래빗이 형사정책연구원의 '소비자 '갑질' 폭력에 대한 피해조사 연구' 보고서를 통해 갑질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조명합니다. 대한민국 갑질의 실제 모습을 조명하는 [팩트알고] 갑질 특집입니다. 10여년 전부터 국내 연구들이 정의한 '갑질'이란 무엇인지, 보고서에 수록된 다양한 정의를 살펴봅니다. 소비자 갑질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도 소개합니다.
뉴스래빗은 [팩트알고]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 갑질의 현실을 3편에 나눠 조명하고 있습니다. 1편으로 선보인 '갑질력 테스트', 다들 풀어보셨나요.

2편부터는 본격적으로 '갑질'의 현실을 파헤쳐봅니다. 마땅한 기준도, 대책도 없는 '갑질'이 무엇인지 정의해보고,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아봅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일 오후 해당 아파트 경비실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촛불을 든 주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애도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경비원 A씨는 전날 새벽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 4월21일부터 최근까지 50대 초반의 아파트 입주민 B씨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뉴스1

2020년 5월 10일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경비원 최모씨는 입주민에게 '소비자 갑질'을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아파트 주민이 올린 국민청원에 30만명 이상이 동의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지만, 수개월 간 이어진 괴로움 속에서도 이 경비원을 지켜줄 안전 장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형사정책연구원의 최신 연구보고서는 서비스업, 판매업 등 종사자의 '소비자 갑질'을 다룹니다. 최근 들어 기준이 마련되고 있는 '직장 갑질'과 달리 피해 규모도, 대처 방법도, 사회적 안전 장치도 모두 명확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2019년 12월 <소비자 '갑질' 폭력에 대한 피해조사 연구>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그간 체감으로만 느껴왔던 '갑질'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기존 연구들을 소개하고, 직접 수행한 설문조사와 표적집단면접조사(focus group interview, 이하 '인터뷰') 결과도 수록했다.

설문조사는 종사자 1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갑질 피해 관련 문항에 답하게 한 결과다. 20여명 규모의 인터뷰는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 판매업 등의 종사자에게 갑질 피해 경험을 더 깊게 물은 '심화판'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직접 낸 목소리도 수록돼 있다.
뉴스래빗은 [팩트알고] 1편에서 소비자가 갑질을 일삼는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했습니다. 설문조사 대상 1000명 중 갑질 피해 경험이 있다는 680명은 대부분 여성, 20대, 소득 100~200만원 사이의 종사자였습니다. 680명 중 여성은 390명, 20대는 164명이었습니다.

최근 1년간 소비자 갑질을 경험한 종사자 분포. 자료=형사정책연구원

그렇다면 이렇게 빈번한 갑질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소비자 갑질'의 5가지 유형과, 소비자가 갑질을 저지르게 되는 요인들을 분석합니다.
소비자 갑질의 종류는?
보고서는 소비자 갑질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소비자)가 상대방(서비스 제공자 또는 판매자)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고 설명합니다.

보고서는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참여자에게 '소비자 갑질 경험 여부'를 물으며 갑질 피해 종류를 아래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 직접적인 욕설 뿐 아니라 비꼬는 말투, 고함, 반말 등까지 포함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조사한 정보를 가지고 갑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불만 표출을 통해 혜택을 받아낸 사례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되고, 이를 기준으로 혜택을 받기 위해 의도적인 폭언이나 모욕적 발언을 한다는 뜻이죠.
원치 않는 성적인 신체 접촉 및 성희롱 치료나 미용 서비스같이 소비자의 신체에 직접 접촉이 많은 분야에서 주로 일어나는 갑질 형태입니다. 이런 업종의 서비스 공간에는 CCTV 설치도 어려워 갑질 피해가 녹화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종사자가 느낀 수치심을 알리는 데 두려움을 가지게 돼 피해 구제에 어려움이 있는 형태이기도 합니다.
위협, 괴롭힘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 갑질의 경우 물리적 위협보다는 협박성 폭언이 주를 이룹니다. '너 잘리게 할거야. 두고봐' 라든지 '높은 사람에게 말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이죠. 인터뷰 대상자는 업무 외 시간에 지속되는 연락도 이러한 유형의 한 예라고 답했습니다.
차별대우 소비자의 차별대우는 직위, 지역, 성별, 출신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윗사람 불러. 너랑은 말 안 통해'라든지 '신입 주제에 뭘 안다고' 같은 폭언이 직위 차별의 예라고 할 수 있죠. 여성 종사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쉽게 잔심부름을 시키거나 폭언을 하는 등 성별에 의한 차별 사례도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신체적 접촉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폭행'입니다. 물리적 폭력을 가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빈도는 낮은 유형입니다. 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 피해 사례가 많은 유형이며, 온전한 정신의 소비자보다는 만취한 소비자가 주로 행사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이 5가지 유형 중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겪어본 갑질은 '모욕적인 비난과 욕설'입니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 1063명 중 83.8%, 891명이 비난과 욕설을 겪어봤다고 답했죠. 뒤를 이은 '위협, 괴롭힘'(22.9%), '차별대우'(22%)보다도 3배 이상 경험 비율이 높습니다.

10명 중 8명 이상 경험이 있을 만큼, 서비스업이나 판매업 종사자들이 비난과 욕설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는 뜻입니다.
갑질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모욕적 비난이나 고함, 욕설', '원치 않는 신체 접촉 및 성희롱', '위협, 괴롭힘', '차별대우', '물리적 신체 접촉(폭력)' 등 5가지 갑질 유형은 과연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요.

보고서는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뿐만 아니라, 24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 결과도 실었습니다. 설문조사로는 들을 수 없는, 종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죠. 응답자들이 직접 겪은 갑질 사례들을 보면 갑질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도 없는데 (고객이) 욕하고 '신입사원이지? 인사 똑바로 안 하냐 새X야. 와서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쳐라'고 굉장히 모욕적으로... 욕을 심하게 했었어요"
"물건을 사가서 다 가지고 놀고 그 물건이 헤질 때쯤 가지고 와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심지어 그 물건이 단종이 됐을 정도로 1년 후에도 오고. 그냥 너무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 안 해드리면 소리 지르시고 막 던지시고 이러셔서, 환불할 물건을 던져요. 사람한테 (...) 웬만해선 그냥 해드려요"
"(...) 일부러 댓글을 쓰시고 글을 올리세요, 인터넷에. 결론은 자기가 낸 비용보다 뭔가를 더 받기 위해서 그러는 거죠. 차라리 앞에서 대놓고 컴플레인하는 경우는 저희가 어떻게 풀어드리기라도 하는데 앞에선 '너무 좋았어요' 하면서 뒤에서 맘에 안 든다고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도 있어요. (...)"
인터뷰 응답자들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 공유되는 후기가 모욕적 비난이나 욕설을 더욱 부추긴다고 설명합니다. 위 응답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 등에 올라온 후기를 보고 와서,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혜택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죠.

이들은 이 유형의 갑질이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흔하지만 대처 방안이 가장 없는 갑질'이라고 꼽기도 했습니다. 종사자를 향한 비난이나 욕설에 뚜렷한 법적 제재가 없고, 유형 특성상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직책을 가지고 있어도 경력과 무관하게 (...) 여자 선생님한테 더 막 대하고, 남자 선생님한테는 오히려 더 의지하는 느낌이에요. (...) 직업 특성상 치료를 위해 신체 접촉이 있는데 만져주니까 '시원한데 거기 좀 더 기쁘게 해줘봐'부터 욕설도 하고... 엉덩이 툭툭 만지시면서 자기 딸내미처럼 생각하신다고 하는 분들도 많아요"
"전화 상담을 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크죠. (...) '잠이 안 와서 그러는데 잘 자요 한 마디만 해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이런 경우에도 해줄 수밖에 없어요. 욕설이 아니니까 저희가 먼저 못 끊잖아요. 그리고 저희 상품 중에 성인 채널들이 있는데 '어떤 게 더 진해?', '어떤 게 어떤 스타일이야?' 하면서 물어봐요"
성적인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증언이 보다 구체적이었습니다. 성적인 신체 접촉이나 성희롱의 경우 여성 종사자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특히 직업 특성상 신체 접촉이 있는 경우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종사자들은 과거에 비하면 빈도는 줄어들었으나, 한 번의 경험만으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치료 등 특정 서비스 공간에는 CCTV 설치가 어려워 증거 확보도 힘들죠. 무엇보다 수치심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두려워 혼자 삭히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요인이 됩니다.
"(...) 여성도 여성 안내원을 무시하고, 남성도 여성 안내원을 무시하고. 직위의 차이가 아니라, 같은 말을 해도 남자 직원이 말을 하면 더 납득하시는 것 같아요. 고객님들이"
"(...) 술에 엄청 취한 남자분이 들어오셔서 (여직원이) 영업 끝났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래도 한 잔만 팔아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 친구가 이미 머신도 다 정리했으니 어려울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대요. (...) 나중에 제가 가보니까 그 남자분이 여직원한테 거의 쌍욕을 하시면서 멱살을 잡으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들어온 걸 보시곤 그 남자분이 갑자기 말투가 바뀌더니 그냥 나가버리시더라고요"
차별대우에 대한 응답은 성별에 따른 경우가 많습니다. 소비자가 여성 종사자를 낮게 보고 무시한 사례들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종사자를 무시하거나 잔심부름을 시키고,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았을 때 폭언, 위협 등을 더 쉽게 나타낸다는 답변이 많았다고 합니다.

보고서는 직위에 대한 차별대우 또한 성별과 비슷한 빈도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뷰 응답자들은 '윗사람 불러, 너랑은 말 안 통해'라든지 '신입 주제에 뭘 안다고' 같은 발언으로 종사자를 무시한다고 답했습니다.
갑질은 왜 일어날까?
그렇다면 소비자는 왜 이런 갑질을 하게 되는 걸까요.

인터뷰에 응답한 종사자 24명의 답을 종합해보면 원인은 크게 5가지입니다. 소비자의 착각이나 오해로 인한 갑질, 혜택을 얻기 위한 의도적 갑질, 과도한 배상을 요구하는 갑질, 적반하장 갑질, 감정해소 갑질 등입니다.
"이미 충분히 공지를 해준 내용을 가지고 고객은 이야기를 안 해줬다고. 그런데 얘기를 안 해준 게 아니라, 법적으로 회사는 고객이 귀찮다고 할 정도로 우편을 보내게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다 등기로 보냈는데도... (...) 심지어는 정말 저희 대표이사 사장실에 그 여자 고객 2명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서 내 돈 내놓으라고 정말 제 고객이 그랬어요"
"고객이 욕설을 하는 경우 3번 경고하고 끊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되었잖아요. 그래서 (...) 욕만 빼고 다 말하는 거에요. 똑같은 말 계속. (...) 사실 그(욕)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원론적으로 세세하게 따지시는 분이에요. 어설프게 알고 계시면서 저희가 제대로 된 설명을 드려도 안 들으세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거죠"
갑질이 발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소비자의 오해, 착각, 무지 등 '귀인 오류' 때문입니다. 잘못된 정보나 판단으로 불이익을 당했을 때, 종사자들의 책임으로 귀인(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을 찾음)하며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는 유형이죠.

보고서는 이 유형의 소비자는 자신이 '갑'이라는 무의식 중에 추가 검증 없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확신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갑질이란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고객님은 객실 벽이나 안 보이는 곳에 씹던 껌을 붙여놓고 (...) 불편해서 이 호텔에 못 있겠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 객실을 업그레이드 해 드리겠다고 하면 한 단계 말고 예약한 객실의 12배 가량 되는 객실을 요구하시면서 안 주면 SNS에 올리겠다고 (...)"
"(...) 검정색 차량은 아무리 깨끗한 걸레로 닦더라도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요. (...) 니들이 다 기스를 냈다. 물어내라. 광택비 60만원을 내놔라. 그러면서 세차를 왜 이따위로 했냐고 욕이라는 욕은 다 하는 거예요. (...) 저희가 광택을 다시 해드리겠다고, 맡겨놓은 동안 렌트까지 해 드리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유명샵을 가서 하겠다고 (...) 결국 60만원을 현찰로 줬죠. 그 고객한테"
두 번째 유형은 '고의적으로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한 갑질'입니다. 추가 서비스나 혜택, 금전적 보상 등을 목적으로 문제 상황을 직접 만드는 경우죠. 이후 문제상황을 회사 또는 종사자의 책임으로 넘기며 원하는 바를 명확히 밝히는 거죠.

인터뷰 응답자들은 이런 유형이 매우 난처하다고 답했습니다. 소비자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만약 문제의 고의성을 조사해 밝혀낸다면 해당 소비자가 부정적 입소문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료가 잘못 나갔을 경우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를 하고 시정해 환불을 하고 음료도 무료로 제공해드렸어요. 그런데 고객님께서는 저희가 일단 잘못했으니까. 환불은 당연한 거고 상품권이라든지 이렇게 대놓고 요구를 하시는 거죠. (...)"
"(...) 축구 경기 봐야 하는데 TV가 갑자기 끊겨서 안 된다고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욕 전화였죠. (...) 기사가 올 때까지 안 끊을 거란 거예요. 주말 시간이고 밤이니까 기사는 당연히 못 가죠. 그걸 알아요, 고객도. 근데 본인의 분이 풀려야 하기 때문에 너 오늘 잘 걸렸다, 네가 오늘 들을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을 내가 해줄게, 너 쫓아간다, 찾아간다. 이런 말을 포함해 온갖 욕... (...)"
과도한 배상을 요구하려는 의도로 갑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가 생겨 종사자나 회사의 사과와 보상을 받았음에도 더 큰 보상을 위해 폭언을 하는 등의 갑질 형태입니다.

회사나 종사자의 잘못을 기회로 삼아 갑질로 발전시키는 셈입니다. 종사자들은 인터뷰에서 이들이 원하는 게 대부분 금전적 보상이라고 설명합니다. 대부분 종사자 입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윗사람 불러' 같은 차별적인 폭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 뜨거운 거 달라고 주문하셔서 뜨겁게 해 드리면 왜 뜨거운 거 줬냐고, 차갑게 안 주고... 저희는 결국 죄송합니다. 저희가 주문을 잘못 받은 것 같습니다. 하고 다시 드리는 거죠. 또 이런 것들을 인터넷에 여기는 커피값만 존XX 비싸고 서비스는 개판이네. 이런 식으로 필터링 하나 없이 남겨요. 남녀노소 상관 없이... (...)"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분께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 중에 너희가 뭔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는 단속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럼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또 한 쪽에서는 담배 피우고 있는데 왜 안 치우냐 저희한테 컴플레인이 들어오고... (...)"
소비자가 잘못에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다 갑질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규율을 어겨 발생한 문제나, 소비자 본인의 잘못을 오히려 종사자에게 돌리는 방식이죠.

보고서는 적반하장 갑질을 저지르는 소비자의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방어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비논리적 언행이나 모욕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욕을 정말 다채롭게 하시는 분도 받아봤어요. 눈을 뽑아서 어떻게 한다, 척추 뽑아서 어떻게 한다, 그런 욕을 막 하시면서 나중에는 너무 듣기 힘드니까 내려놓고 있으면 또 본인이 욕하는데 성취감이 많이 떨어지나봐요. 중간 중간 듣고 있어? 듣고 있냐고? 이렇게 물어봐요. (...)"
종사자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갑질을 하기도 합니다. 실질적인 이득을 바란다기보다, 감정을 해소하기 위함이죠.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의 갑질에는 짜증, 분노, 성적 욕구의 표출 등 다양한 감정이 포함됩니다. 인터뷰 응답자들은 이에 대해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소통이 불가능해, 체념하고 받아주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속 '갑질'은 일상 속에 있다
갑질의 종류는 무엇이고, 어떤 마음가짐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니 전혀 특별한 상황들이 아닙니다. 커피숍, 세차장, 전화 상담, 인터넷 쇼핑 등은 소비자라면 누구나 자주 가는 곳들입니다.

종사자들은 카페에서 음료가 잘못 나왔거나, 충분히 고지한 내용을 받지 못했거나, TV가 갑자기 끊기는 등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에서 '갑질' 피해를 느꼈다고 증언했습니다.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작은 차이로 갑질은 발생합니다. 화를 참지 못해 욕을 하거나, 분이 풀릴 만큼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상대방의 사정은 안중에 없이 내 사정만 고려하는 등 '역지사지'가 깨지는 순간 일상적 문제는 '갑질'로 발전합니다.

경비원이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초소의 모습/사진=뉴스1

문제는 소비자의 이런 행동에 종사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스스로 불합리한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이 어떤 피해를 입을지는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비스업이나 판매업 종사자들은 '소비자 갑질'로 인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까요. 일상 속 갑질로 이들이 입는 피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준비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준비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팩트알고] 3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 팩트알고[팩트알고]는 뉴스래빗 팩트체크 기반 설명형(explanation) 콘텐츠입니다. 참 또는 거짓으로 양분할 수 없는 수많은 사회 문제를 질문답변 형식으로 풀어드립니다. 데이터 저널리즘에 기반한 설명과, 몰입감을 더하는 인터랙티브 시각화도 함께 제공합니다. 뉴스래빗이 지난 2018년부터 기획·개발·디자인을 더해 시작한 [알고] 시리즈의 최종판입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강종구 한경닷컴 기자 jongg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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